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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이야기

座談会(좌담회) 우리나라의 合唱音楽(합창음악) 본문

서울시향 히스토리/1966년

座談会(좌담회) 우리나라의 合唱音楽(합창음악)

Sergeant Lee 2022. 1. 12. 10:28

座談会(좌담회) 우리나라의 合唱音楽(합창음악)

경향신문 | 1966.10.29 기사(좌담/대담)

우리나라의  合唱音楽 ( 합창음악 )좌담회기사1966년10월29일 경향신문

座談会(좌담회) 우리나라의 合唱音楽(합창음악)

본사주최 대음악회를 계기로

좌담회

보편성 대중성위에 국민개창운동으로 멜로디속에 살자

향토적 리듬을 발굴해야

 

경향신문 창간20돌과 서울합창단창립9돌을 기념하는 대음악회는 오는2(196611)(하오4730)로 박두..

공전의 향연을 위해 마지막 연습이 한창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협연으로 벌어질 이 합창대공연에서는 우리의 창작물인 칸타타」 「나의조국 (김규환작곡)풍년제(이동욱 작곡)가 처음으로 전곡 발표됨으로써 벌써부터 팬들의 큰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를 계기로 경향신문사와 서울 합창단에서는 우리나라 합창음악 전반에 걸친 얘기들 듣는 좌담회를 다음과 같이 마련했다.

 

합창운동의 발자취

 

본사측=먼저 우리나라에서의 합창운동의 발자취부터 말씀을 시작해주시면 합니다.

자유롭게 서로 말씀해주십시오.

=해방 후 모든 음악활동은 합창으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후 합창운동하면 종교음악단체 오라트리오등이 주로 활동했고 사회단체로서는 별로없었죠

김만=서울에서도 오키스트라가 없었지만 지방은 더욱 형편이 나빠 기악보다 합차이 성행했습니다. 해방 당시 대구에서는 박태준박사 지도로 1년에 한번씩 교회를 중심으로 메시아를 공연하던 기억이 납니다.

김금=과거 일제밑에서 평양쪽도 교회합창이 중심이었죠. 김규환씨가 더 잘아시겠군.

난 신의주니까

김규=일인 지휘의 평양합창단 서문고녀 숭실중학등을 중심으로 합창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래보았자 그때엔 군가가 주였고 기껏해야 슈만유랑의무리정도였죠.

김만=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어린 마음에도 할레루야코러스를 듣고 가슴이 뭉쿨하곤했습니다. 큰 코러스가 민중에게주는 감동은커서 그때 각계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쉬웠습니다.

 

삶을 건전하게 즐기자

 

이성=합창은 보편성과 대중성이 그바탕입니다.

악기가 필요없이 누구나 목소리를 가지고 자유로이 함께부를수있으며 그 성과는 생을 건전하게 엔조이 할수있다는 점이죠.또 교가를 불러 정신을 통일시켰다는 이야기는 합창만이 가지는 효과죠. 2차대전후 독일에서 칸타타가 성행해쓴데 우국 단결 재건을 표방하는 칸타타는 국민의식을 앙양시키는데있어 오페라나 다른형태보다 훨씬강한 성격의것이죠

= 이번 연주회에서 소품이아닌 칸타타를 한꺼번에 올린다는 의미는 여러면으로 퍽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외국작품이나 소품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직장중심합창운동

 

이성= 외국에서는 다섯명.열명만 모여도 합창을 한다더군요.

요즘 아마추어 합창이 나오는경향이 있는데 반가운 일입니다.

 

김금=국민개창운동이 일어나고 집안끼리 야외로 놀러가서도 합창을하며 즐기게되어야죠.

요즘음 서울시내학교에서 교사단위 학교단위의 합창단을 만들고 주1회씩 부르자는 공문이 내려지고있습니다.

합창이갖는 성격적인 중요성을 인식했나봐요.

김규=직장중심으로 되어야 발전합니다

이성= 김만복씨 부탁할 것 하나있습니다.

시향연주때마다 쉽고 재미있는 합창을 오키스트러 반주로 한곡씩넣어 관객들과 다같이

부르게 할수없어요?

김만=정기공연에선 곤란하지만 좋은 얘깁니다

 

서울 합창단의 위치

이성=서울 합창단의 얘기를 좀합시다.

장선생 그동안의 얘기를 하십시오.

= 우리 서울합창단이 탄생한 것은 1957년 정동의 문총회관에서였습니다.옆의 제2방송국 제1스타디오에서 연습을했죠. 김동진 선생의 지도로

이성= 처음엔 4~50명 정도였는데 지금응 일반부 고등부 소년부로 나뉘어 2백여명으로 늘었다니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공연횟수도 78회나 된다니 대단한 성괍니다.

이성= 이번에 경향신문에서 좋은일하고있는데 ,사회단체에서 뒷받침응 해주어야 합니다.

가령 외국의 어떤 신문사는 교향악단을 단독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농구니 야구니하는 스포츠는 각기업체에서 경쟁적으로 키우고있는데 음악분야는 아예 거들더보지도 않아요.

굉장한 재주를 가지고있는데 춥고 배고파 빛을 못보는 일이 많잖아요?

아국의 국무성파견이라는것도 우리보다 사실 실력은없어요

=만일 기업체에서 음악분야를 돕기로하면 스포츠의 10분의1예산도 안들겁니다

 

두 창작공연은 처음

이성=이번 공연에 우리의 창작 큰 것을 두 개나 공연한다는 일은 지금까지 없던일이도 뜻깊습니다. 나의조국」 「풍년제의 솔리스트와 작곡자는 감회가 클줄압니다

금옥=나의조국은 아름다운 조국의 노래예요

불러보니 화음으로 까다롭지않고 씩씩한 멜로디 변화가 있어요

이영=정말 동감이에요

김금= 창작물이고 해서 충분히 연습해서 잘 불러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나의조국은 묵직한 노래이고 풍년제는 독특한 우리민요를 살린 친근감있고 아름다운 음률입니다.

이동= 풍년제15년전에 전라도에 피난가서 작곡한것인데 조금 개작해볼까하다가 그냥 두었습니다.

나로선 시골풍의 촌티가 나는 향토성이 진한 하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이런계통의 훌륭한 작품이 없어 작곡에 곤란을 좀 받았죠.

김규=향토적인 것, 앞으로 연구해야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저의 경우 나의조국은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의 앞날에 광영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곡했읍니다만

김만= 동양의 독특한 세계를 서양에서와서 채굴해서는 저들의 이국적인 모티브로 삼고있습니다.그러나 우리 보고를 갖고있으면서도 지금껏 개척을 못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독특한 리듬을 갖는 우리의 작품을 세계에 소개할수있게 힘써야 할것입니다

 

좌담참석자

이성삼(음악평론가) 김만복(시향지휘자) 김규환(나의조국 작곡자) 이동욱(풍년제 작곡자) 김길환(테너) 김옥자(소푸라노) 이영애(앨토) 서수준(합창지휘자) 본사측 이구열 김주연(문화부기자)

1028일 서울합창단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