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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이야기

시향과 함께 고락 15년 일념 국제적 앙상블의 꿈 본문

서울시향 히스토리/1962년

시향과 함께 고락 15년 일념 국제적 앙상블의 꿈

Sergeant Lee 2021. 3. 12. 17:10

시향과함께 고락15

일념국제적앙상블의 꿈

유일한 백회 연주 개근자 한린환씨

경향신문 19621022

시향 백회 소식 경향신문 1962년10월22일

15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팀파니스트 한린환(48)씬 단한사람의 개근자이다.

시향이있는곳에 그가이었고 그가있는곳에 시향이있어왔다.

오직 꿈결같지요라고 감개에 젖는 그를 여기에 클로즈업시키는 것은 낙원모두가 1백회를 같이해왔다느면 얼마나 원숙한 앙상블을 갖는 국제적 악단이 되었을까하는네 생각이 미칠적에 그와같은 성심과 인내가 값진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그렇지 못한 이유는 적은악원보수와 생활난에있었다.

견디다못해 연주생활에서 교직생활로 가야했고 보다나은수입을 위해 경음악단으로 또는 다른길을 찾는속에서 한씨는 미동조차 않했다.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NBC가 유명한 것은 낙원모두가 20,30년을 변동없이 같이 연주해왔기 때문에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때문이었다.

한번짜인 멤버에 움직임이 없어야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인데 우리 악단에는 이러한 존재가 왜 대단한 사람뿐이었는가를 반성해보고싶다.

한씨는 중학교 1년때부터 두들기는 일을 좋아했다.

연젼시절에 이르기까지 그가 두들긴건 그야말로 북이었다.팀파니는 서울관현악단때부터 오늘까지 4조를 같았다.

그에게 두들기는 일을 본격적으로 가르친이는 김원복(피아니스트)씨의 아버지 김형준(테너 트럼피터)씨로 부터였다.

그럭저럭 33년간을 그는 두들기며 살아온 셈인데 그렇게 열심히 다른 것을 두들겼다면 부자가 됐을것이라고 가끔 친구의 놀림을 받는일이있다고...

물론 연주가로서의 긍지도 있겠지만 그는 스포츠를 겸해서 타악기를 해왔다는 것.

그는 육신이 허락하는한 두들기는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리도 외국음악인처럼 늠퇴하는일이 없이 오래 같이 했음년 해요

악원들의 평균연령이 올라가고 앙상블 이 짜일적의 권위를 생각해보세요 라고 말했다.

팀파니스 스틱의 헤드가 빠저 달아나 혼이난일이며 악원이 앉은 대가 무너져서 부상을하고 연주를 계속한일 때마침 닉슨부통령이 참관하고 있었지만 625때라서 우리의 실정이 반영된 듯 더욱 박수를 받은일등 웃지못할 일도 많았지만 오늘의 수준은 초창기와 비해 운니의 차라고도 말하는고 있다.

한편 한ㅆ니는 지금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는 한동일군의 부친이기도 하다